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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장일범의 오케스트라 이야기 7 - 클라리넷

clahobbyist 2009. 8. 22. 15:34


“고양이는 늑대가 나타나자 숨을 죽이고는 재빨리 나무 위로 뛰어올라갔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에 등장하는 동물들 중 고양이는 클라리넷이 연주한다. 나른하고 관능적이기까지 한 고양이. 클라리넷은 낮은 음역의 스타카토로 고양이의 살금살금 걷는 모습과 거드름 피우며 걷는 모양을 표현해내는데 이장희의 시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처럼 나긋 나긋하다. 그런가 하면 늑대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아주 날렵하게 나무 위로 도망치는 고양이의 모습은 장식음을 이용해서 최저음에서 고음까지 빠른 진행으로 익살스럽게 표현해낸다. 

고양이로 등장하던 클라리넷은 뻐꾸기로도 변신한다.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깊은 숲 속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뻐꾹’ 소리는 중음의 클라리넷으로 표현되며 말러 교향곡 1번 <타이탄(거인)> 1악장에서는 고음의 스포르잔도(Sforzando)로 클라리넷이 강하고도 맑고 선명한 ‘뻐꾹’소리를 표현한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에서는 아름다운 전원 속에서 목가적이고 우아한 뻐꾸기 소리를 메아리치게 해 준다. 
우아한 클라리넷 선율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바로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가 잠깐 달콤한 낮잠을 자는 장면에서 듣던 그 꿈결같던 음악도 바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아니던가. 
세 옥타브 반의 폭넓은 음폭을 자랑하는 클라리넷은 음역에 따라 다양한 소리와 색채를 지니고 있다. 가장 부드러운 음색으로부터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에 이르는 동안 펼쳐지는 풍부한 표현력, 아무리 빠른 패시지라도 수월하고 민첩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꾸며진 악기 구조의 편리성 때문에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와 팝에서도 클라리넷은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천의무봉의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 시드니 베세, 베니 굿맨으로부터 영화감독 우디 앨런, 그리고 리처드 스톨츠만에 이르기까지 재즈와 팝 부문에서 클라리네티스트로 명성을 얻은 20세기 아티스트들이 즐비한 이유다. 
클라리넷은 색소폰과 함께 목관악기 중 싱글 리드(Single Reed, 홑 리드)악기이다. 마우스피스에 끼워 떨림을 이용, 소리를 내게 하는 리드가 두 장짜리가 아니고 한 장이라는 이야기. 그래서 지난 여름 중국 장춘에서 열린 2004 세계단적대회(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세계 홑 리드 악기 축제)에서는 클라리넷인들과 역시 싱글 리드 악기인 색소폰인들이 함께 사이좋게 모여 즐거운 시리즈 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색소폰에 비하면 클라리넷은 비브라토를 덜 쓴다. 색소폰의 비브라토에 비해 감칠맛이 적고 비브라토 없이 맑게 울리는 목가적이고 청아한 음색이 더욱 매력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라리넷은 다른 목관악기들과는 달리 색깔이 검다. 이유는 간혹 장미나무나 단풍나무로 만들기도 하지만 주로 아프리카산 흑단(Ebony)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흑단은 나무의 중심으로 갈수록 색이 검고 껍질 쪽으로 갈수록 점점 흰색을 띠기 때문에 좋은 클라리넷은 중심부의 가장 질 좋은 부분을 골라 만드는 것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작품 중 <에보니 협주곡>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 ‘에보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바로 클라리넷이 흑단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클라리넷은 음악사에 중요한 전기를 제공하기도 한 악기다. 금남의 집이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카라얀이 여성 클라리네티스트인 1960년생 자비네 마이어를 발탁, 입단시켜 이후 베를린 필에 여성들이 입단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든 악기였기 때문이다. 
클라리넷은 목관악기의 대장노릇도 톡톡히 해낸다. 윈드 앙상블(취주악단)의 공연을 지켜보면 클라리넷이 상당히 많이 포진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의 역할을 클라리넷이 윈드 앙상블에서 하기 때문이다. 또 비올라의 역할은 알토 클라리넷이, 첼로의 역할은 색소폰과 베이스 클라리넷이 맡게 된다. 
다른 목관악기 중에서 클라리넷과 가장 소리궁합이 잘 맞는 악기는 바순이라고 많은 작곡가들은 판단했다. 모차르트, 베토벤, 슈타미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단찌, 프랑크 같은 작곡가들이 바순과 함께 어우러지는 클라리넷 곡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장일범 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성악과를 수료했다. 안양대 겸임교수 겸 빈체로 예술감독. 2004년 서울공연예술제 집행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KBS 1FM 실황음악회 중계해설자와 ‘장일범의 출발 FM퀴즈’를 진행 중이다.

출처: http://www.sceneclub.com/